흠... 물은 100도에서 끓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지식으로 보더라도 1기압에서조차 100도에서 끓지 않거든요. 다시 알아보세요.
들어가며
예, 그렇습니다.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지 않습니다. 심지어 1기압에서조차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지 않습니다. 상식이라고요? 그딴 상식은 "진실"이 아닙니다.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상식은 진실이 아니다. 다만 진실일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입니다. 그와 비슷한 내용을 한국어 위키백과 사용자 페이지에 적어 두었습니다.
상식과 객관적 내용은 항상 옳다?
유감스럽게도 객관적 내용이 항상 옳지는 않다. 객관적 내용이 좀 더 옳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식(常識)은 주관적 내용이 없고, 모두 객관적 내용이다. 객관적이지 않으면 상식이라는 개념으로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이 틀리고 주관적 내용이 옳은 때가 있다. 심지어 그 상식이 전문 연구자의 연구 결과이며, 그것이 여러 차례 다른 전문 연구자가 논증 및 실증한 경우에도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상식이나 객관적 내용이 옳으므로 정확한 지식이나 근거가 없다면 상식이나 객관적 내용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도의 판타지 세계 적응기
[과학도의 판타지 세계 적응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간단히 책이라고 줄이겠습니다.
뭐, 작가님이 과학적 지식을 판타지에 잘 적용시켜 놓았더군요. 그런데 몇 가지 오류가 나타나 있습니다.
-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반드시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모든 것을 과학적 설명을 했더군요. 정작 문제는 마법사들이 느끼는 마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아니면 아예 마나를 전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었을까요? (뭐 책의 내용을 보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 역시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아무튼 뭔가 설명이 필요할 성싶은데 말입니다.
- 책에서 주인공이 마법사들과 논쟁하면서 그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데, 그것이 현재 작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문을 외어 현상을 발현하는 그들의 현상 자체를 분석하기보다는 자기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처구니 없게도, 하늘에 있는 별을 보고 그 별이 뜨고 진다고 해석하는 마법사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주인공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현상의 재해석이지, 현상 자체의 해석은 아닙니다. 아마 그 때문에 마나에 대한 해석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게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마나에 대해 해석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과학자적 자세이니까요. 하지만 과학자의 편협한 자세이기도 하지요. 마나라는 물질이 실존하지 않더라도, 일단 마법사들의 행위에 따른 현상이 실존한다면, 그것을 그 자체로 해석할 필요도 있습니다. 참고로 과거 유리겔라의 가짜 초능력을 밝혀낸 사람들은 그것을 실존하지 않는 능력이라고 부정한 과학자가 아니라, 현상 그 자체를 분석하려고 시도한 과학자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 양자역학에 나타난 기본입자가 가장 작은 입자일까요? 유감스럽게도 알 수 없습니다. 그 기본입자보다 더 작은 것이 있을 수 있죠. 말도 안 된다고요? 왜 말이 안 되지요? 과거에는 원자을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알갱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물질의 기본 구성 단위라고도 정의했고요. 그러나 현재는 원자도 쪼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기본 구성 단위라고 정의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기본적 구성 단위라고 정의합니다. 각설하고 앞으로 과학이 더 발전하면 기본입자도 쪼갤 수 있는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 간혹 과학적 지식과 잘못된 상식이 뒤섞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을 수도 있지만, 이 글의 제목처럼 섭씨 100도에서 끓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과학은 상식이 아닙니다.
과학은 상식이 아닙니다. 과학은 지식입니다.
그런데 왜 물은 섭씨 100도에 끓는다고 말할까요?
일단...
- 처음에는 1기압에서 물이 섭씨 0도에서 얼고,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고 정했습니다.
- 하지만 현재는 1기압에서 섭씨 약 0도에서 얼고, 섭씨 약 100도에서 끓습니다. 정확하게는 1 기압(101.325 kPa)에서 물은 섭씨 99.97도에서 끓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이 바로 정상 끓는점(Normal boiling point) 또는 대기압 끓는점(atmospheric pressure boiling point), 대기 끓는점(atmospheric boiling point)이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번에서는 기준이 "물"이었습니다. 하지만 2번에서는 더 이상 물을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비슷한 예로 1일을 비롯한 1시간, 1분, 1초 등의 계량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 예전에는 지구에서의 태양의 남중 고도를 측정해서 다시 태양이 남중할 때까지를 24시간으로 정하고, 그것을 24로 나누어 1시간이라 했지요. 1시간을 60으로 나누어 1분, 1분을 60으로 나누어 1초입니다.
- 그러면 지금은? 세슘 원자 시계로 1초를 재고, 그것에 60을 곱해서 1분, 거기에 다시 60을 곱해서 1시간이 됩니다. 그리고 1일은 더 이상 SI 표준 단위가 아니지만, 편의상 24시간을 1일로 보고 Si 표준 단위와 섞어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준이 태양의 남중 고도에 따른 1일이 기준(거창하게 말하면 평균 태양일이라고 한다)이었지만, 현재는 세슘 원자시계로 측정한 1초가 기준입니다.
다른 예로 1미터(m)에 관한 사항이 있습니다.
- 처음에는, 1793년에는, 지구 남북극과 적도 사이의 거리를 1천만으로 나눈 값입니다. 다시 말해 지구 남북극에서 적도까지가 1천만 미터라는 뜻이지요.
- 1799년에 백금으로 된 표준 미터 원기의 길이를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1960년까지 이처럼 금속 표준 원기를 기준으로 삼았지요.
- 1960년에 다른 방법을 시도합니다. 바로 진공에서 크립톤-86 원자의 2p10과 5d5 준위 사이의 전이에 해당하는 복사 파장의 1650763.73배를 1미터로 정의했습니다.
- 현재는 1983년에 정한 진공에서 빛이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를 1미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지구 남북극으로부터 적도까지의 거리를 1천만 미터로 보고 1미터를 계산했지만, 지금은 반대로 광속도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를 1미터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의 기준은 지구 남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이지만, 지금의 기준은 광속입니다.
끝맺으며
뭐 고등학생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주인공은 분명히 "공대생"입니다. 그것도 화학 전공이 아니던가요? 더구나 1기압에서 물의 끓는 점이 섭씨 100도가 아니라는 사실은 고등학생도, 심지어 문과생도 조금만 신경 쓰면 알 수 있는 오류입니다.
게다가 또 다른 문제는 국제 순수 및 응용화학연맹(IUPAC)에서는 물의 끓는점을 섭씨 99.61도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때 측정 기준은 1 bar (100 kPa)입니다. 이것을 표준 끓는점(standard boiling point)이라고 부릅니다.
어이, 주인공! 화학 전공 맞습니까? 화학 전공이라면 IUPAC에서 정한 표준 끓는점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덧붙이자면, 저는 전공이 사회학입니다. 이과 아닙니다. 그것도 벌써 16년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해 버린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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